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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유의 마을 이름과 지명의 어원

"왜 서울은 예전엔 '한성'이었을까?" – 수도 이름의 3번의 변화

by eco-wood-1 2025. 7. 31.

1. 조선의 수도 ‘한성’: 한강과 함께 흐른 천 년의 이름

서울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전, 조선 왕조는 수도를 ‘한성(漢城)’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 지명은 단순한 명칭이 아닌, 조선의 국가 정체성과 왕조 권위, 그리고 한강이라는 자연 지형과 깊게 얽힌 문화적 표상이었다. ‘한성’은 ‘한강의 도시’라는 의미로, 본래 백제 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했던 이 지역의 중심성을 반영한다. ‘한’은 강을 뜻하거나, 고유어 ‘큰’을 의미하는 요소로 해석되며, ‘성’은 도시 또는 성곽을 의미했다. 즉, ‘한성’은 문자 그대로 '큰 강 곁에 있는 도시', 혹은 '한강의 성'이라는 뜻이었다.

고려 말, 조선이 건국되며 태조 이성계는 이 지역을 수도로 정했다. 당시 공식 명칭은 ‘한성부(漢城府)’로, '부'는 수도권의 관청 행정 단위를 의미했다. 한성은 조선 500년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궁궐과 관청, 시장과 골목이 발달한 복합도시로 성장했다. ‘한양’이라는 명칭도 병행해서 사용되었지만, 한성은 보다 격식 있는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그만큼 한성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품격과 위상을 담아낸 이름이자, 수도로서의 위엄을 담은 상징이었던 것이다.

"왜 서울은 예전엔 '한성'이었을까?" – 수도 이름의 3번의 변화

2. '경성'으로의 전환: 일제강점기의 지명 식민화

1910년,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강제 병합한 이후, 한성이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대신 일본은 서울의 이름을 ‘경성(京城)’으로 바꾸었다. ‘경(京)’은 일본어에서 ‘수도’를 뜻하고, ‘성(城)’은 도시를 의미한다. 겉보기에는 수도를 뜻하는 단어지만, 이는 조선의 수도 정체성을 무력화하고, 제국 일본의 행정 체계 아래로 편입하기 위한 의도된 변경이었다. ‘한성’이라는 고유한 역사성과 정체성을 지우고, 새로운 지명으로 식민통치의 질서를 구축하려는 전략이었다.

경성이라는 이름은 조선총독부가 서울에 세워지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일본어 발음으로는 '케이조(けいじょう)'라 불렸다. 경성 시대에는 도시계획, 도로 정비, 철도망 구축 등 일본식 도시 인프라가 도입되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 본토의 이익을 위한 구조였지 조선인의 삶을 위한 발전이 아니었다. 경성이라는 지명은 조선의 정체성을 억압하고, 그 이름 아래에서 역사와 언어, 문화마저도 식민화되었다.

한성에서 경성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지명 변경이 아닌, 한민족의 자율성과 문화적 자존에 대한 상징적 침탈이었다. 많은 조선인들은 경성이라는 명칭을 수용하지 않았고, 일상적으로 여전히 ‘서울’ 또는 ‘한양’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비공식적인 ‘서울’이라는 단어가 이 시기에 민중들 사이에서 더욱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도, 식민 통치 아래에서도 자신들의 도시를 지키려는 민족적 저항의 표현이었다.

 

3. ‘서울’의 등장과 정착: 해방 이후 민족 정체성의 회복

1945년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새로운 국가의 수도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한성’도, 식민 지명의 ‘경성’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명칭을 채택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서울’이다. '서울'이라는 말은 본래 순우리말로, ‘수도’ 혹은 ‘큰 도시’를 뜻하는 고대 한국어의 유산이다.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에도 백성들 사이에서는 ‘서울’이라는 표현이 간간이 쓰였으나, 공식 지명으로 등록된 것은 광복 이후가 처음이다.

1946년 1월 1일, 공식적으로 '서울특별자유시'가 발표되며 ‘서울’은 대한민국의 행정 중심지로 명문화되었다. 이는 단지 새로운 도시 이름을 붙이는 차원이 아니라, 일제 식민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적 자주성을 회복하려는 상징적 조치였다. 더불어 한자 표기를 피하고 순우리말을 채택함으로써, 한국어의 고유성과 독립국가의 언어 정체성도 함께 강조한 선택이었다.

현재 서울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심장부로,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 이름의 배경에는 ‘한성’의 전통과 ‘경성’의 아픔을 거쳐 ‘서울’이라는 순우리말로 정체성을 회복해 온 역사적 여정이 깊이 깔려 있다. 서울이라는 이름은 단지 행정구역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수천 년간 이어온 우리 민족의 공간성과 기억,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끈질긴 생존과 자주성의 상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