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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유의 마을 이름과 지명의 어원

"홍제동, 물이 솟아오르던 왕실의 동네?" – 이름 뒤에 숨은 역사

by eco-wood-1 2025. 8. 6.

1. “홍제(弘濟)의 뜻은 무엇이었나?” – 이름에 담긴 유교적 이상

‘홍제동(弘濟洞)’이라는 이름은 한자만 놓고 보면 마치 수려한 이름의 유학 서원이나 사찰을 떠올리게 한다. ‘홍(弘)’은 넓다, 크게 펼치다는 의미이고, ‘제(濟)’는 건너다, 돕다는 뜻을 가진 한자다. 두 글자를 합치면 ‘널리 세상을 구제하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이는 유교적 통치이념인 “홍익인간”의 연장선에서 볼 수도 있다.

홍제동이라는 지명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인데,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이 지역은 산세가 수려하고 샘물이 솟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 조선 시대에 북악산과 인왕산 자락 사이에 자리한 이 지역은 풍수지리적으로 왕가나 고관대작이 머물기에 적합한 장소로 여겨졌고, 실제로 이 일대에는 왕실과 관련된 별서(별장)나 정자, 행궁 등이 종종 세워졌다.

‘홍제’라는 이름이 처음 붙은 정확한 시점은 명확하지 않지만, ‘백성을 널리 구제하는 이상적인 장소’로서 왕실이나 권력자들이 이 지역을 의미 부여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단순히 지역의 명칭이 아니라, 지명에 ‘정치적·도덕적 이상’을 투영한 조선 시대의 문화적 관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즉, 홍제는 물리적 공간임과 동시에 이상국가의 정신이 투영된 상징적인 장소였다고 할 수 있다.

 

2. “홍제천은 왜 왕실의 물길이었나?” – 청계천과 연결된 생명의 하천

홍제동의 중심에는 홍제천(弘濟川)이라는 하천이 흐른다. 이 물길은 단순한 도랑이나 하수가 아니라, 조선 시대 내내 한양의 물길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생활하천이었다. 홍제천은 북악산과 인왕산의 계곡물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청계천과 합류한 후, 다시 중랑천과 한강으로 이어지는 수계의 일부였다.

특히 이 홍제천은 왕실의 행궁이나 별서가 자리한 곳에서 흘렀기 때문에, 왕족과 상류층이 물을 사용하거나 정원을 조성할 때 매우 중요하게 여긴 수로였다. 지금은 복개되거나 콘크리트로 정비된 구간도 있지만, 과거에는 맑고 깊은 물줄기가 계곡을 따라 흘렀고, 봄이면 물가에 버드나무가 드리워졌으며 여름이면 피서처로도 활용되던 곳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과 문인들 사이에서도 이 지역은 풍류를 즐기는 명소로 자주 언급된다. 정약용은 이 지역의 샘과 계곡에 대해 아름다운 시문을 남겼고, 그 외에도 많은 사대부들이 이곳을 거닐며 자연과 함께 도학의 이상을 성찰했던 장소로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홍제천은 단순한 개울이 아닌, 왕실과 연결된 수로이며 동시에 문화적·정신적 풍경이 담긴 생명의 하천이었다. 그리고 그 하천을 중심으로 홍제동이라는 이름도 자연과 인간, 그리고 왕권의 조화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홍제동, 물이 솟아오르던 왕실의 동네?" – 이름 뒤에 숨은 역사

3. “일제강점기와 현대를 거치며 지워진 이름의 의미” – 지명을 지키는 일의 가치

홍제동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큰 변화를 겪었다. 과거 왕실의 별서가 있던 자리는 헐리고, 홍제천은 도로와 철도 아래로 밀려나며 점차 ‘기억 속의 풍경’이 되었다. 일제는 서울의 행정구역을 재편하면서 ‘홍제리’, ‘서대문구 3 정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명을 축소, 통합, 왜곡했고, 그 과정에서 지명의 본래 의미나 역사성은 지워지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서울이 도시화되고, 서대문구가 고층 아파트와 도로로 메워지면서 홍제동은 이제 “교통 요지” 또는 “주거지구”로서의 이미지가 강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홍제천 일부는 복원되어 흐르고 있고, 홍제역 인근의 안내판이나 박물관 자료에서는 이 지역의 이름과 관련된 역사적 설명이 조금씩 복원되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도시문화재단, 로컬 역사해설가, 지자체 콘텐츠 개발자들 사이에서 '지명의 역사와 복원'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홍제동의 경우도, 단순한 지명을 넘어 ‘물의 도시 서울’의 정체성, 조선의 도시계획, 왕실과 민간의 연결고리’로서 다각도로 재조명할 가치가 높다.

결국 홍제동은 이름부터 지형, 수로, 역사까지 단단하게 결속된 '왕실 문화의 흔적'이 깃든 공간이다. 우리가 이 지명의 뜻을 되새기고 그 속에 담긴 철학과 기억을 복원할 수 있다면, 도시 속 잃어버린 정체성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앞으로의 도시 콘텐츠 개발에 있어 정체성과 차별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